송태규 (시인, 교육학박사)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려는 바람과 틈을 주지 않으려는 창문이 다투는 소리가 요란하다. 잔뜩 게으름을 부리고 싶어 하는 몸과 그런 몸을 꾸짖는 내 마음이 덜컹대는 소리로 들렸다. 마음 편에 손을 들어주고 동네 호수를 따라 산책길에 나섰다. 물결이 출렁인다. 물의 결은 바람이 시키는 대로 일정하게 켜를 지으면서 비늘을 움직인다. 길가에 서 있는 나무들도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일제히 결에 따라 우듬지를 기울인다.

마음은 어디에 있고 어떤 모습일까, 마음을 잘 쓴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내 마음은 바람에 따라 어떤 결을 일으킬까. 얼굴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드는 생각이다. 깊은 물은 도도하게 흐름을 유지하지만, 태풍을 만나면 고요함을 잃고 앞을 막아서는 것을 모조리 집어삼킨다. 온전한 마음자리는 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 어떤 외물에 따라 마음이 움직이면 물결을 일으키며 요란해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잠잠해진 마음자리도 외물이 작용하는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제가 차지하고 싶은 마음인 탐심, 왈칵 성내는 마음인 진심, 어리석은 마음인 치심이 비 온 뒤 잡초처럼 웃자라기도 한다. 이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마음결’이다. 우리는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쓰느냐에 따라 진급이 되기도 하고 혹은 강급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불교 화엄경에서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이 마음먹기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누구나 가진 재물이 없어도 마음의 결을 잘 다스리면 남을 도울 재주가 있다. 어느 날,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는 한 젊은이가 부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남에게 베풀며 살라!"고 말했다. 그 젊은이가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남에게 베풀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부처님은 "재산이 없어도 베푸는 방법이 있다."라며 재물이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종류의 보시를 젊은이에게 가르쳐 주었다. 이른바 '무재칠시(無財七施)'다. 1. 밝은 미소로 대하는 화안시, 2.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언시, 3. 어진 마음인 심시, 4.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안시, 5. 몸으로 베푸는 신시, 6. 남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좌시, 7. 상대의 마음을 살펴 도와주는 찰시가 그것이다. 이 '칠시(七施)'를 마음결에 새기면 누구나 마음 잘 쓰는 일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성장하며 집단의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끊임없이 타인, 즉 사회와 관계 속에 살아간다.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 그는 확대된 사회인 인간관계의 결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필연적으로 내가 알고도 혹은 모르고도 행하는 일들이 주변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작 마음을 잘 쓴다는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참 거창하고 어렵게 다가오기도 한다.

타인의 언행이 나의 성에 차지 않으면 그때마다 깨진 거울에 비치는 사물처럼, 조각난 마음이 다투는 내 모습이 보인다. 이런 일을 당하면 어떤 마음결을 지녀야 할지 생각에 잠기곤 한다. 이럴 땐 칠시 가운데 언시와 안시로 응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테다. 항상 밝은 눈빛과 목소리로 마음을 전하면 빛깔과 음색이 변한다고 했다. 비록 훌륭한 사람은 못될망정 어리석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마음결을 다진다. 돌아오는 길 해거름에 바람이 자고 호수는 잔잔한 본래 마음으로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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