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가격 안정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가격이 폭등하면 당장 소비자들은 식생활에 위협을 느낀다. 요즘처럼 사과 1개에 만원이라면 한숨이 절로 나오게 마련이다. 반면에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면 이번에는 농민들이 아우성이다. 밭을 갈아엎고 애써 가꾼 농산물을 거리에 쌓아놓고 짓이긴다. 아예 밭에서 썩혀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모두 농산물 수요가 가격 변화에 비탄력적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비싸도 먹어야 하고 싸도 일정량 이상을 소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래저래 농산물 수급 안정이라는 숙제는 좀처럼 풀기 어렵다.

국내에 국한된 문제만도 아니다. 곡물 같은 경우는 글로벌 시장 추이가 국내에도 큰 영향을 준다. 국제 곡물 시장에서 밀이나 옥수수 가격이 급등하면 가공식품은 물론 곡물을 사료로 사용하는 축산물까지 따라 오르는 식이다. 원재료 값이 오르니 제품값이 인상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에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보통은 곡물 가격 상승이 일반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20%를 넘지 못하는 만큼 에그플레이션에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올해의 경우 곡물 생산이 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슈퍼 엘니뇨 등 기상 여건이 안 좋은데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요소까지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곡물 수급 안정이 우리나라로서는 큰 과제로 떠올랐다.

곡물뿐만 아니다.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코코아 가격 등이 큰 폭으로 뛰고 있다. 코코아의 경우는 46년만에 가장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커피와 오렌지 주스 가격도 작년부터 고공행진 중이다. 이처럼 여러 식재료 값이 인상되고 있는 것은 가뭄과 태풍, 폭우 등 기상이변이 잦고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국내 농산물 가격도 치솟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농산물 가운데 채소류 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과 비교해 12.2%나 올랐다. 파와 토마토는 50% 이상 뛰었다. 2월 전체 농산물 가격 역시 지난해 동월 대비 20.9% 상승했다. 이는 2011124% 오른 이후 최고 상승률이다. 과일 물가가 40.6%로 가장 많이 올랐고 채소(12.2%), 곡물(7.9%) 등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문제는 정부 차원서도 마땅한 대응 카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해외 수입량을 늘리고 관세를 인하하는 게 고작이다. 사과나 배 같은 민감한 품목은 수입도 쉽지 않다. 농업 특성상 올해 수확기를 기다리는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이를 놓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태도가 천수답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올해 식량 생산이 감소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엘니뇨에 이어 라니냐까지 닥친다는 예상이다. 본격적인 에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책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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