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옥 극작가
/정선옥 극작가

/정선옥 극작가, 소설가    

나의 엄마 이름은 세 개다. 영례, 미남, 오남이 그 이름이다. 감히 어른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다니, 예의가 없어도 한참 없다. 하지만 요즘은 사랑스러운 엄마의 이름을 ○○씨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엄마를 껴안으며 ○○씨 부르는 이름은 공경을 넘어선 사랑스러움이 느껴진다.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엄마의 호적 이름은 유오남이다. 그러나 우리 자매들은 처음 엄마의 이름이 유영례였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이름은 유미남이 되었고 유오남이 되었다. 이유를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긴 하다. 시골에서는 면서기가 한자를 잘 모르는 시골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의 이름을 마음대로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엄마의 호적 이름인 유오남 역시 그렇게 태어난 이름일 것이다. 

어려서 너의 엄마 이름이 어떻게 되시냐, 물으시면 유 영자. 례자입니다. 이렇게 공손하게 말하는 법도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교육받은 기억이 있다. 엄마 역시 호적 이름이 유오남인 줄은 나중에 알았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 엄마의 이름은 유미남이었다. 아마도 다섯 오 자가. 아름다울 미로 읽혀서 유미남이 되었지 싶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딸의 이름이 다섯 오자에 사내 남이라니. 

엄마의 이름뿐만 아니라 엄마의 동생들 이름 역시 여러 개다. 그중 막내 삼촌의 이름이 지어진 사연은 유별나다. 삼촌은 갓난아기 때 열병에 걸려 갑자기 숨이 멎어버리고 말았다. 이미 늦은 밤이었다. 어른들은 아이가 죽으니 항아리에 넣어서 묻으려고 항아리와 삽을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돌연 비와 천둥, 번개가 요란하였다. 어쩔 수 없이 날이 밝으면 묻으리라 생각하고 아이를 윗목에 밀어놓았는데 새벽 무렵 아이가 깨어나 다시 울었다. 삼촌은 죽었다 다시 살아난 것이다. 외할머니는 절에 가서 삼촌의 사주를 물었는데 삼촌은 그때 이미 한번 죽은 목숨이라고 했다. 외할머니는 단명할 운명을 바꾸려고 삼촌을 절에 팔았다. 그래서 삼촌 이름은 판세가 되었다. 그러다 그 이름은 어느 날 호적 이름인 판술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여동생인 막내 이모 이름은 복남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만난 이모의 이름은 순종이 되어 있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이것만 봐도 엄마네 동네 면서기는 아마도 이름을 마음이 가는 대로 지으셨던 것 같다. 

요즘이야 호적으로 올린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는 세상이다. 우리집은 딸이 넷이다. 모두 착할 선 자 돌림으로 선옥, 선화, 선자란 이름이 있고 돌림자를 쓰지 않는 막내동생 윤숙이 있다. 딸만 내리 낳는 집에서 아들을 낳는 일은 중요했다. 엄마는 셋째딸을 낳았을 때 다음은 아들을 보리란 염원을 담아 이름을 선자라 지었다. 아들 선호사상에서 지어진 이름이 우리집에도 있었던 것이다. 자의식이 강했던 동생 선자는 결국 이름을 바꿨다. 남동생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휘둘리는 것이 싫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아주 부드러운 느낌의 예쁜 이름을 쓴다.

이렇게 요즘 사람들은 이름을 쉽게 바꾸기도 한다. 그런데 그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어른이 될 때까지도 호적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순순히 당신들의 이름을 수용하였다니 그저 재미있을 따름이다. 

복남이란 이름도 판술이란 이름도 영례란 이름도 모두 집에서 부르던 예명이었다. 이런 이름들의 사연은 알아볼수록 재미있다. 요즘 우리 엄마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유오남이 되었다. 무엇을 하든 신분증 확인이 필요한 세상이니 그렇다. 

난 아직도 엄마를 떠올리면 분홍색 한복을 입고 햇살처럼 웃던 봄 새악시가 그려진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떠올릴 때면 엄마에게 이렇게 불러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영례 씨, 우리 봄놀이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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