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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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전주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A원장은 전라일보와의 통화에서 암울한 산부인과의 현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A원장은 ”주변 지역에서 불이 안 난다고 소방서를 없앨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분만이라는 것은 이제 공공의료 차원으로 이해를 한 뒤 국가가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분만 건수가 계속 줄어드는 상황에서 수익이 나지 않자 많은 병원이 문을 닫았고, 이제 지역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수익보다는 의무감이 큰 상황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피부과 등 고수입을 보장하는 분야가 버젓이 존재하는 상황에 의사들에게 산부인과를 운영하게 만들려면 결국은 수익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일은 적은 상황에 비슷한 수익이 생긴다면 당연히 지방에 남아 병원을 운영할 것이 이치이지만, 현재 지역의 산부인과에서 젊은 의사를 찾는 것은 어려운 상태이다“고 말했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종합병원들의 필수 의료인력 확보와 최저임금 인상 등의 이유로 산부인과 등 기초 의료 의사들의 인건비가 급격히 상승했다. 

수도권의 경우에도 산부인과 전문의 1명당 월 약 1300만 원 이상의 인건비를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한 인건비를 제시해도 인력을 구하기 힘든 상황으로 전해졌다. 

분만산부인과를 24시간 운영하는 데 필요한 필수 의료인력은 1일 8시간 근로 기준, 산부인과 전문의 3명과 1개 병실당 6명의 간호사가 고용돼야 한다. 이는 3교대로 주말 없이 근무했을 때의 최소 인력으로, 실제 근무 환경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의료인력이 요구된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분만산부인과 1곳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인건비로만 연 약 6억원 상당이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등에서 추진하는 분만 취약지역 지원사업의 인건비 지원액은 연 1억 5000만 원으로 의사 1명을 고용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나머지 비용은 지역 산모들의 분만을 통해 충당해야 하지만, 나날이 줄어가는 산모의 숫자로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전북도에 따르면 2023년 8월 29일 기준 도내에 거주하고 있는 임산부 숫자는 6,627명으로 지역별로는 전주 2,893명, 군산 921명, 익산 920명, 정읍 322명, 남원 251명, 김제 377명, 완주 348명, 부안 155명, 고창 138명, 임실 80명, 순창 70명, 진안 57명, 무주 53명, 장수 42명이다.

가장 임산부 숫자가 적은 장수에 분만산부인과가 개설될 시 모든 산모가 지역에서 분만을 한다는 가정을 해도 일주일에 한 건도 병원에서 분만이 이뤄지지 않는다.

현재 아이 1명을 분만했을 때 병원이 받게 되는 의료 수가는 약 50만원으로, 미국과 비교했을 때 20분의 1(약 1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모든 산모가 해당 지역에서 분만을 해도 민간이 병원을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또 최근 의료가 취약한 지역에 지원되는 전북지역의 공보의 숫자도 지난 2021년 373명, 2022년 357명, 2,023명 325명으로 매년 20명가량이 감소하고 있어 지방의 의료서비스는 나날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 의료계에선 사라져갈 수밖에 없는 산부인과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전북의 경우 현재 전주 시내 병원들도 분만 건수가 절반 수준으로 하락해 모두 적자로 돌아선 상황이다“며 ”인구가 줄어들고 인건비가 올라가는 상황에 지방에 새로운 산부인과를 개설하는 것은 이제 현실성이 없다. 교통·통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만 지금의 지방소멸을 그나마 지연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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