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와 프라이

오피니언l승인2021.09.30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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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데미안>은 1919년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헤세가 발표한 소설이다. 발표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서 <데미안>을 출판한 출판사가 수십 군데가 넘을 정도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2019년 방탄소년단(BTS)이 발표한 2집 앨범 ‘피, 땀, 눈물’의 모티브로 <데미안>이 사용되면서 이 소설은 젊은 층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소설의 내용 중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라는 문구가 가장 널리 인용되고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

새와 알에 관한 내용은 교육 분야에서 널리 인용된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의 과정을 줄탁동시(?啄同時)라고 한다. 이 말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 안에서 어미 닭에게 신호를 보내면 어미 닭은 이 소리를 듣고 밖에서 그 소리가 나는 부분을 같이 쪼게 되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다는 의미이다. 병아리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동시에 같은 부분의 알을 쪼아야만 한다. 어미 닭은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데 작은 도움을 줄 뿐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이다. 어미 닭은 병아리가 연약한 부리로 알을 쪼는 소리를 세심하게 듣고 있어야 한다. 병아리가 신호를 보내기 전에 어미 닭이 알을 쪼아 알을 깨면 병아리는 죽고 만다. 어미 닭은 스승의 역할을 하는 멘토이고 병아리는 지도 또는 조언을 받는 멘티의 역할이다. 무언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멘토와 멘티 양쪽에서 노력해야 유의미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불확실한 세상을 읽고 찾아가는 자신만의 지도를 정신모형이라고 한다. 과거의 성공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지도를 정신모형1이라고 하고, 미래의 목적지를 설정해 놓고 그곳에 가는 여정을 지도로 만든 것을 정신모형2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모형1의 지도는 갖고 있지만 정신모형2의 지도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미래가 불안하고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제대로 된 정신모형2 지도가 없기 때문이다. 정신모형1의 지도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재 변화하는 세상의 지형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주어야 한다.

피드백은 정신모형1 지도에 따라 행동을 했을 때 생긴 실수의 경험을 지도에 새롭게 반영하는 행동이다. 실수가 없다면 정신모형1 지도의 문제점을 알 수 없다. 실수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업데이트를 하든 새로운 정보를 찾아 업데이트를 하든지 해야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게을리 하게 되면 정신모형1 지도는 알껍질이 되고 만다. 그 속에 사람들을 가두게 된다. 실수를 두려워해 피드백을 못하고 업데이트를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알껍질은 두꺼워지고 그 속에 갇힌 사람들은 알을 깨고 나오기가 더 힘들어진다. 자신이 알 속에 갇혀 있음을 깨닫고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정신모형2 지도가 필요하다.

자신의 성찰을 통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미래의 삶에 대한 목적지를 설정해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실수를 통해 피드백을 받는다. 그런 과정이 지속되면 정신모형1 지도를 깨고 미래에서 현재를 보는 정신모형2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 세대의 부모가 ‘부의 대물림’이 자식사랑이라고 여기는 행태는 우려스럽다. 자식이 평생 먹고 살 걱정 안 하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는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자식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느냐고. 부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자식들은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신모형1 지도에 갇혀버려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기 쉽다. 결핍과 풍요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결핍은 배움에 대한 의지를 불태워준다. 배고픔을 아는 사람은 배고픔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창의성도 이 때 발현된다.

먹고 살 것을 걱정할 때 최고의 실력이 나온다. 풍요로움에 갇혀 있는 사람은 구태여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배움에 대한 갈망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다. 정신모형1 지도에 갇혀 살게 된다.
알을 깨고 나올 때 누가 주도적으로 알을 깨느냐에 따라 내용과 결과도 천양지차다. 자기 스스로 계란을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계란을 깨면 프라이가 된다. 계란이 병아리가 되느냐, 프라이가 되느냐의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만큼 크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놓고 볼 때 스스로 근대화 혁명(명치유신)을 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자주적 개혁에 실패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자율적 개혁과 타율적 개혁은 큰 차이가 있다. 개혁은 자신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기 때문에 고통이 뒤 따른다. 이것은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다.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끝나지 않았다는 믿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고3이 대학에 진학할 마지막 기회가 아니듯, 대학졸업이 인생의 출발점이 아니듯, 늦었다고 생각했던 그 때 다른 일을 시작했더라면 지금은 달랐을 텐데 후회하고 있는 시기에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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