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백과전서파’··· 53년간 ‘이재난고’를 쓰다

<6>이재 황윤석>총 6000여장 분량 현존 조선시대 일기류 중 최대 전라일보l승인2021.11.23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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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불은 금세 집을 뒤덮었고 화염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때 황종윤 씨가 불 속에 몸을 던졌다. 이재 황윤석의 5대 종손으로서 장서의 소실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몇몇 유고와 장서들이 소실되긴 했지만 이재가 직접 쓴 이재난고와 이수신편 성씨운휘 등을 구해냈다. 과연 어떤 책이었길래 자신의 몸까지 바쳐 구한 것일까.

이재 황윤석(齋 黃胤錫)은 1729년(영조 5) 흥덕현(지금의 고창) 구수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가는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353에 위치한다. 이는 부친 황전(黃廛)이 세운 것으로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25호이다. 본관은 평해 황씨로 자는 영수이며 호는 이재 또는 순양자, 소요산인, 소요주인 등이 있다.

'군자는 한 가지 사물이라도 알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君子恥一物之不知)'라는 신념으로 박학(博學)의 학문체계를 지향했다. 이재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서와 경전을 읽으며 탐구했다. 미호 김원행(渼湖 金元行)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정통 유학자로서 노론(낙론)계열의 학맥을 계승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공리공론을 떠나 실사를 바탕으로 이용후생을 중시하는 박물학적 실학자로 성장하게 된다.
그의 학문적 성과는 이재난고(齋亂藁)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재난고는 그가 10세 때부터 53년간 쓴 일기다.

책마다 쓰기 시작한 연대와 끝낸 연대를 기록하고 난고 또는 이재난고라는 표제를 달았다. 총 6,000장 정도의 분량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일기류 중 최대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저술한 저작 가운데서도 가장 방대하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된 이재난고는 50여 책으로 구성돼 있다. 1권부터 46권은 일기 형태의 기록물이고 47권은 책력과 수학에 관한 역수잡기(曆數雜記), 48권은 평해 황씨에 관한 자료를 모아 놓은 것이다. 49권부터 52권은 이재가 직접 쓴 연보, 53권은 잡지(雜識), 54권부터 56권은 잡지를 후손이 절록한 책, 57권은 역사책으로 1589년(선조 22)부터 1622년(광해군 14)까지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을 바탕으로 축약하고 정리한 것이다.

기록한 햇수와 분량만 보더라도 범상치 않은데 그 속의 내용도 출중하다. 주고받은 편지와 자신이 읽었던 책에 관한 내용도 있다. 일식과 월식과 같은 천문 현상뿐만 아니라 지진과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까지 기록에 남겼다. 이점 때문에 천문학자와 기후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국밥 한 그릇의 값부터 말을 빌리는데 낸 비용 등 자신이 겪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글로 남겼다. 특히 그가 과거를 보러 한양까지 가는 길을 상세하게 기록한 「서행일력(西行日曆)」은 지명과 지역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한국고문서학회에 발표된 ‘『이재난고』의 여행기 분석 : 「서행일력」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노혜경 호서대 교수는 “이재는 한양에 가는 여정을 대부분 서행일력이라는 제목으로 기록했다”며 “날짜별로 거쳐 갔던 지역, 이용했던 길, 지역 간의 거리, 묵었던 주막, 시장 물가, 절경에 대한 감회를 쓴 시, 고적지(古蹟地)에 대한 유래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나 있다”고 밝혔다.

이재난고에는 신문물에 관한 관심과 그를 수용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데 그중에서도 자명종에 대한 언급이 많다. 그는 18세에 정읍의 이언복이 60냥에 구매한 자명종을 구경했고 1761년(영조 37)에는 나경적이 제작한 자명종을 직접 보기도 했다. 1774년(영조 50) 염영서를 통해 선급금 5냥을 주고 사들인 내용이 기록돼 있다. 박순철 이재연구소 교수는 “이재는 서양의 것이 절대 체(體)가 될 수 없다고 봤다”며 “신문물을 받아들이되 우리의 환경과 조건에 맞게 사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관찬 사료는 일반 백성의 실제 생활상을 보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기호철 문화유산연구소 길 연구위원은 “이재난고를 통해 조선시대 풍수와 음악, 문학, 경제, 과학 등 전반을 살펴보며 관찬 사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며 “단순한 일기를 넘어 과학자의 연구노트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재와 이재난고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07년에는 이재의 학문과 사상을 중심으로 호남 실학과 전통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이재연구소가 설립됐다. 이재연구소에서는 꾸준히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관련 서적을 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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