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수십 년전 ‘깃발 관광’이라는 말이 널리 유행한 적이 있다. 패키지 상품으로 해외여행을 가면 빠듯한 일정에 강행군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가자면 맨 앞 가이드가 든 깃발만 보며 정신없이 종종걸음을 해야 한다. 그 상황을 꼬집는 말이다. 세계 유명 관광지마다 한글로 쓴 깃발이 휘날리고 행여 길을 잃을까 걱정인 한국인 관광객들은 깃발 뒤만 졸졸 따른다. 결국 여행을 갔다가 온 뒤 뭘 보았냐는 질문에 멋쩍은 표정으로 ‘깃발’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관광패턴의 원조는 1970년대부터 해외여행 붐을 이룬 일본이다. 보통은 좋은 의미에서 질서의식이 강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깃발 뒤를 줄지어 따르는 좀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거기에 침을 뱉거나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고 교회 미사에서 플래시를 터뜨리는 등의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들이 한국에 오면 기생관광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패턴은 1990년대 한국인, 2000년대 중국인에 그대로 재현되기에 이르렀다. 요즘 매너 없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일본은 과거 자신들이 모습을 보는 듯하다며 쓴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이처럼 한동안 한국인들에게 관광은 그저 경치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색다른 풍습을 보면 부지런히 사진 셔터를 눌러대는 수준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해외여행이 대중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외국을 오가게 되면서 상당한 변화가 닥쳤다. 개인 맞춤형 테마 여행, 체험 지향 여행, 환경친화적 여행, 공정 여행 등 다양한 패턴들이 일상화하는 중이다.

문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14일 ‘2022년 국내 관광 트렌드’를 발표했다. 이 트렌드는 최근 3년간의 빅데이터 분석, 전문가 심층 인터뷰, 여행소비자 설문조사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키워드는 ‘HABIT-US’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개별화 다양화 ▲누구와 함께라도 ▲경계를 넘어 ▲즉흥 여행 ▲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상이 된 비일상 ▲나의 특별한 순간을 뜻하는 영문의 첫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한마디로 과거 깃발 관광과 정반대다. 환락을 찾아 단체로 몰려다니는 게 아니라 현재, 나의 행복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개인화, 파편화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바로 관광 시민이라는 용어다. 여행할 때 환경과 안전, 주민-관광객 갈등 등의 문제를 깊이 인식하는 사람이 관광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소비자들은 개인의 행복 추구와 함께 공동체의 상생도 염두에 둔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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