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칸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의 판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었다. 비록 황금종려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헤어질 결심’의 박찬욱 감독이 감독상을, ‘브로커’ 주연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높아진 한국 영화의 위상을 한껏 과시한 쾌거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성과는 비평가주간 폐막작에 선정돼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한몸에 받은 ‘다음 소희’라는 작품이다. 한국 영화가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상영된 것은 처음 일이다. 실제 영화 상영이 끝나자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7분간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또 평단에서도 좋은 시나리오와 능수능란한 감독의 연출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비평가주간 집행위원장은 “충격적이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 중심축은 콜센터에 나가게 된 특성화고 3학년 학생이 겪는 고통과 좌절이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고된 감정노동과 실적 압박에 거의 질식사할 지경의 노동현 장을 고발했다. 결국 이 학생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정주리 감독은 “정말 한국적인 이야기여서 외국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놀랐다”며 “보편성이 아니겠나. 어린아이가 겪은 힘듦을 다 함께 이해해 준 게 아닌가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음 소희’는 메시지는 묵직하지만 소재는 작은 이야기였다. 정 감독도 “아무리 작은 이야기지만 열심히 하면 어디선가 누군가는 귀 기울여준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막대한 제작비나 유명 스타, 기발한 스토리라인 등이 없이 작은 스토리만으로 이렇게 국제적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명품을 만들다니 놀라운 일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의 한국 영화 도약은 한국적 이야기의 힘을 또 한 번 확인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1990년대 중후반 이전까지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열렬한 호응을 얻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k-팝과 드라마, 게임 등 대중문화가 상승세를 타면서 영화 역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결실이 바로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기생충’이다. 
  이제 한국 영화의 저변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칸에서 거둔 ‘다음 소희’의 성공은 한국 이야기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웅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한국이 걸어온 격동의 역사가 있다는 분석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군사독재, 급속한 산업화, 민주화 투쟁까지 우리 민족은 굴곡 심한 도전과 응전을 이어왔다. 거기서 풍부한 이야기 소재가 나오고 이를 가공하는 우수한 예술인들이 있다는 게 한국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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