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묵, Loss of ego, 90x60.6, 적색 한지에 먹, 콩테, 채색, 2021
김판묵, Loss of ego, 90x60.6, 적색 한지에 먹, 콩테, 채색, 2021

교동미술관이 심오한 고찰을 품은 예술작품들로 가득 찬다.

교동미술관은 29일부터 내달 4일까지 전북인물작가회 단체전과 문향선·박마리아 개인전을 진행한다.

제23회 전북인물작가회 ‘기억의 얼굴’전은 본관 1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전북의 인물작가 14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사람은 얼굴에 생각을 담는다”고 입을 모은다. 인간이 소리 나는 말보다 소리 없는 표정으로 진한 감정을 나누며 살아간다고 말한다.

올해는 세계적 전염병 코로나 시대의 위기 속에서 멈춰버린 이웃 사이의 관계에 집중한다. 팬데믹 이후의 주변 인물들의 형상을 예리한 관찰로 형상화했다.

작품 속 인물들은 표정으로 말을 걸기도 하고, 울거나 웃거나 무표정하거나 소리 없는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듯하다.

참여 작가는 권영주, 기원진, 김성춘, 김정아, 김중수, 김판묵, 박상규, 박선영, 박천복, 유기준, 이경례, 이철규, 진창윤, 홍경준. 

진창윤 전북인물작가회장은 “이번 전을 통해 잊혀가는 것에 대한 직시, 그를 통한 관계의 깨어남, 회복을 기대한다”며 “잠시나마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내면의 사유가 기억을 타고 되살아나 환영에 빠질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예술의 가능성일 것”이라고 전했다.

본관 2층에서는 한지조형작가 문향선의 개인전 ‘You;niverse-환경위기시각’이 진행된다.

‘환경위기시각’은 세계 환경파괴 정도를 전 세계 100여 개국의 NGO, 기업, 정부 등의 환경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전문가들이 느끼는 인류생존 위기감을 시간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올해 환경위기시각은 9시 35분으로, 지난 30년 동안 약 120분 늘어났다. 12시에 가까워질수록 환경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진다.

문 작가는 빳빳한 평면 형태의 한지 물성을 파괴하여 반구 형태로 재구성한다. 이 작업 과정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직접 체험도 가능한데, 관람객들은 반구 형태의 입체감 있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 들어가게 할 수 있다. 인간의 행동 심리를 바탕으로 무의식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순간을 경험해봤으면 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겨있다. 관람객들은 직접 손으로 작품(환경)을 파괴한 심정과 본인이 생각하는 현재의 환경위기시각을 적어볼 수도 있다.

2관에서는 박마리아 개인전 ‘지나온 관문(棺門), 맞이할 관문(關門)’을 준비했다.

박 작가는 지난해 발생한 쿠팡 물류창고 화재 사건을 계기로 박스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작품에서 ‘박스’라는 일상적 소재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편의 속에는 형용할 수 없고 해결할 수도 없는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아이러니의 정체에 대한 질문과 깊은 연관이 있다.

로켓만큼이나 빠르고 편리한 배송 서비스 덕분에 우리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기권을 돌파하는 로켓이 폭발적인 속도를 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불태워야 하는 것처럼 편리한 신속함의 이면에는 소모되는 ‘무엇’이 존재했다.

삶과 죽음, 안녕과 위기, 그리고 편리함과 불편함 등 작가가 마주했던 아이러니들은 일회용 종이 박스로 이루어진 관문으로 표현된다.

관문은 탄생, 성장, 결혼과 출산 그리고 죽음 따위와 같은 인생에서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관문(關門)’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관(棺) 문(門)’이라 말하고자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관문(棺門). 작가는 작품을 통해 인생의 관문들을 통과하는 여정의 끝에는 무거운 어둠이 아니라 선연한 빛이 가득했으면 하는 소망을 전한다./임다연 기자·idy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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