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균 전주대학교 박물관장
/이상균 전주대학교 박물관장

                                                                 /이상균 전주대학교 박물관장

 인류의 역사는 5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명 형성 이후의 역사는 문헌사학이 중요한 영역이었지만, 문명 이전의 장기간에 걸친 인류의 역사는 고고학적인 방법에 의해서 밝혀진다. 또한 문헌기록이 충분한 역사시대에 있어서도 고고학적 증거로 여러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밝힐 수가 있다. 문헌이란 극히 제한된 계층 신분을 대상으로 한 것이 많고, 역사가들의 오류에 의해 기록된 부분도 적지 않다. 이러한 오류 부분이 고고학적 자료에 의해 바로 잡히기도 한다. 또한 역사시대의 연구, 특히 고대사의 분야에서는 발굴조사를 통해서 얻어진 자료가 빈약한 문헌의 내용을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헌사학만 역사라고 단정하면 큰 오산이며,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문헌사학과 고고학을 병행하여 연구하여야 한다. 

  전라도 천년사에서 다루어진 문명 이전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까지이며, 그간의 고고학 발굴조사로 이루어낸 학문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전라도 전역의 범위를 충실히 담아내려고 노력하였다. 이 중에 몇 유적을 소개하자면, 후기구석기의 표본으로 알려진 임실 하가유적,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로의 이행을 알 수 있는 제주 고산리유적, 한일 문화교류의 정수를 보여준 여수 안도패총이다. 이러한 유적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유적들로 전라도 역사의 유구성을 입증해 주고 있다.

  우리 고장의 임실 하가유적에서 출토된 구석기는 격지와 돌날, 각추상석기, 나이프형석기, 슴베찌르개, 나뭇잎모양찌르개, 새기개, 밀개, 긁개, 홈날, 돌확모양석기, 갈돌 등 27,000여 점에 이르고 있다. 시기는 23,000여 년전으로 후기구석기인들의 생업 터전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중에 나뭇잎모양찌르개는 정교하게 가공된 것으로 유럽 후기구석기의 석기와 비교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각추상석기는 발견 사례가 많은 일본열도와 비교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슴베찌르개도 우리나라에서 일본열도로 제작 기술이 이동된 석기이다. 하가유적은 후기구석기시대의 석기가 단일유적에서 모두 출토된 사례이며, 우리나라를 넘어 유럽과 동아시아 문화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후기구석기의 마지막에는 후빙기의 급격한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수림의 생태, 동?식물의 분포가 변하였다. 전라도 영역이었던 제주 고산리유적에서는 화살촉, 토기의 출현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서막을 알리게 되었다. 고산리유적에서는 문양이 없는 갈색토기, 융기문토기와 더불어 이등변삼각형의 화살촉이 출토되어 구석기에서 신석기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문화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산리식토기로 불리는 갈색토기는 융기문토기보다 선행되는 토기임이 확인되었고, 출토된 유물은 후기구석기의 석기제작과 신석기시대의 토기제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신석기시대로 이행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전 시기에 걸쳐, 각종 유구는 물론, 토기, 석기, 어로구, 장신구 등이 다양하게 조사되었다. 여수 안도패총에서는 토광묘, 화덕자리, 수혈유구, 집석유구 등이 조사되었다. 토기는 승문계토기와 융기문토기, 자돌문, 압인문, 침선문토기, 이중구연토기 등 신석기시대 전 시기에 걸쳐 출토되었으며, 석기는 돌토끼, 돌창, 돌톱, 돌수저, 흑요석편, 숫돌이 출토되었다. 어로구는 돌톱, 돌작살, 결합낚시바늘이 있으며, 이러한 어로구는 외양성 어로구로 전라도 해안은 물론 서북큐슈까지 폭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처럼 선사시대부터 전라도 지역에는 이들이 남겨놓은 많은 유물과 유적을 통해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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