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극을 놓고 흔히 조선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판소리에 출연자들의 연기와 춤을 더한 음악극이 창극인데 이것이 서양의 뮤지컬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뮤지컬은 원래 19세기 영국에서 탄생했다. 유럽의 연극과 오페라·오페레타 등이 뒤섞여 탄생한 장르다. 노래와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데 창극이 이와 형식적인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우리 창극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세기 초 판소리가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지 못하자 새로운 형식이 시도됐다. 바로 대화창이다. 대화창은 판소리의 일인극을 벗어나 두 사람이 서로 대화 형식으로 창을 주고받는 형식이다. 춘향전 무대에 남녀 명창이 등장해 한 명은 이도령을 다른 한 명은 성춘향을 맡아 연기하며 노래하는 것이다.

이 대화창이 점점 발전해 출연자 수가 늘고 연기가 강조됐다. 또 도구도 갖춰졌으며 무대도 화려해졌다. 창극이 제 궤도에 접어든 것이다. 전라도 출신 명창들이 김창환을 구심점으로 김창환협률사를 조직했는가 하면, 같은 전라도 출신 송만갑도 송만갑협률사를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창극은 일본에서 들어온 신파극에 밀려 점차 존재가 희미해졌다. 명창들도 지방으로 내려갔고 자칫 맥이 끊길 위기가 왔다.

이를 일으켜 세운 이는 호남재벌 김종익이었다. 그는 1933년 조선성악연구회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송만갑·이동백·정정렬·김창룡·박녹주 등 기라성 같은 명창들이 대거 참여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였다. 일제의 탄압으로 암흑기에 접어든 창극은 해방 이후에야 다수 창극단이 생겨나면서 기지개를 켰다. 여성국악인들이 세운 여성국악동호회도 그 중 하나다. 그렇지만 이 역시 1960년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결국 창극은 1962년 국립국극단 창단과 1973년 서울 장충동에 국립극장이 신축됨으로써 본격적인 발전기를 열었다.

이 창극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0일 영국 에든버러 인터네셔널 페스티벌에서 국립창극단 트로이의 여인공연이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현지 언론으로부터도 별 5개 최고점을 받았다. 낯선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꽉 메운 현지 관객들은 소리가 마음을 울렸다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가디언지는 별 5개를 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빛나는 공연이라고 극찬했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창극의 인기가 치솟는 상황이다. 국립창극단이 최근 마련한 정년이‘, ’베니스의 상인들등 공연이 좌석이 매진되는 성황을 이뤘다. 우리나라 고전뿐만 아니라 동서양 고전을 재해석하고 웹툰을 도입하는 등 도전적인 창작 정신이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통 문화로서 판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과는 또 다른 행로라고 할 수 있다. 창극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악극 형식으로서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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