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능력시험(TOPIK) 이메일 회원가입 화면.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이메일 회원가입 화면.

공인어학시험인 한국어능력시험(토픽·TOPIK)의 회원가입 시스템이 허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암표상들이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해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등 시험장 자리를 대거 확보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20일 본보 기자는 토픽 홈페이지에 들어가 암표상들의 ‘시험장 자리 확보’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직접 확인해 봤다.

토픽 회원가입은 총 3단계로 이뤄진다. 약관 동의와 본인인증을 거쳐 회원 정보를 입력하면 가입이 완료된다.

문제는 ‘본인인증’ 절차다. 본인인증 절차에는 휴대폰 인증과 아이핀 인증, 이메일 등 3가지로 나뉜다.

앞서 휴대폰 인증과 아이핀 인증은 정확한 본인인증을 해야 하는 반면, 이메일 인증은 허술한 점을 보였다.

무작위로 한글 성명과 영문 성명을 입력 후 이메일을 입력하고, 해당 이메일로 인증하면 가입된다. 정확한 ‘본인인증’ 없이도 타인의 이메일 등만 있으면 가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수백여 개의 시험장을 가지고 있는 암표상이 나타나게 된 것.

이처럼 허술한 이메일 인증을 통과하면 회원정보를 입력하는 데, 더 큰 문제는 가입 당시 입력했던 개인정보를 시험장을 예약 후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교묘한 수법을 통해 암표상들은 다량으로 회원 가입한 후 시험장을 독점, 얻어낸 시험장 자리를 2~4배라는 웃돈을 받고 판매하고 있었다.

판매 방식도 간단하다. 암표상에게 구매 의사를 밝히면 사진과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받아낸 개인정보로 암표상은 미리 만들어 둔 계정에서 회원정보를 수정하고 결제하면 끝이다. 

전북대학교 유학생 A씨는 “중국의 유명 SNS(샤오홍슈)는 판매 사이트로 전락한 지 오래고 암표상들이 대놓고 홍보하고 있다”며 “암표상들이 유학생들에게 표를 판매하지 못한다면, 이미 신청 기간이 지난 상태라 정작 필요한 이들은 시험을 볼 수 없다. 이로 인해 외국인 유학생들의 졸업, 취업에 대한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관리 주체인 교육부 국립국제교육원은 이메일 회원가입 시스템이 유학생들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국립국제교육원 관계자는 “외국인들이 본인인증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특성상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이 같은 방안을 택했다”고 말했다.

제94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 신청 당시 대기인 수./박민섭 기자
제94회 한국어능력시험(TOPIK) 신청 당시 대기인 수./박민섭 기자

무엇보다 단 몇 초 만에 시험장 자리가 사라진다는 다수의 외국인 유학생들의 증언을 비춰 볼 때 ‘매크로 프로그램’의 사용을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또 응시 신청 시 수천 명의 대기자 수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개인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험장 자리를 어떻게 선점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암표상./박민섭 기자
시험장 자리를 어떻게 선점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는 암표상./박민섭 기자

한 IT 업계 관계자는 “수십 개, 수백여 개의 시험장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는 증거인 것”이라면서 “매크로를 사용하지 않고 일일히 작업하며 확보하기에는 토픽 내 시스템 적으로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국대학교 유학생 B씨는 “암표상과의 대화에서 수백여 개의 시험장 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많은 외국인의 응시 신청 경쟁에도 밀리지 않고 장악한 것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이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국제교육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중국에 있는 한 업체에서 결제 대행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경환 신정호·최경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증언 등을 비춰볼 때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는 등 정보처리에 장애를 발생시키는 행위로 볼 수 있다"면서 "이는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적용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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