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김용근 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남원은 백성이 주인노릇을 잘해온 고을이다.

그 흔적들은 역사문화 속에서 크게 보이고 가장 큰 실체는 광한루에 들어있다.

광한루는 대부분 사람들의 머리에 이도령과 성춘향의 사랑 기억을 내어준 곳이다.그 사랑이야기는 조상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판소리로 영화로, 소설로, 현장에서 해설사의 설명으로 누구에게나 보이고 들린다. 그렇지만 그보다 앞선 광한루의 속살이 있다. 그것은 남원 백성들의 결집체로 세상에 태어난 광한루를 재건하거나 증수할 때의 이야기이다.

작은 초막에서 진화해온 광한루는 큰 건물이고 건축비용도 엄청났을 것이다.지방의 작을 고을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재정과 인력이 필요한 사업이었을테니 말이다.그런데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증수되었고 재건되었으며 단청되었다.그때마다 백성들의 몫은 곤궁의 살림에서 덜어낼 세금과 노역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 남원고을 사람들은 왜 망설임과 원망하지 않았을까?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사람들의 구술에서도 광한루의 재건과 중건에 사람들의 원망서린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남원 고을에 생긴 큰 전쟁으로 가난과 배고픔이 앞에 놓인 시기에도 남원 백성들이 너나없이 가장 먼저 몸과 마음을 낸 것은 불타버린 광한루를 시급하게 복원하는 것이었다.

그처럼 고을 백성들의 마음을 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그 엄청난 일은 백성들 스스로가 돈과 노역을 내어주어야 하는 고통이었을 텐데 말이다.그것은 모두가 바라는 세상의 염원을 광한루에 두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남원백성들은 남녀노소, 동서남북, 사농공상, 빈부귀천이 없는 나라의 염원을 광한루에 들였고 그 일은 백성이 고을의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고을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으니 훗날 광한루는 세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했으나 일제 강점기의 춘향사당은 전국의 권번도 참여했으니 나라백성의 마음까지 광한루에 들어온 것이다.

광한루는 그 마음을 가진 남원고을과 나라백성들의 민의가 하나로 결집된 것이고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하니 광한루는 남원고을 사람들과 나라 잃은 백성들의 민의의 결집체인 것이다.

그 민의의 결집체가 훗날 사랑의 에너지로 세상을 향하니 춘향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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